프레첼은 우리가 흔히 마주하는 평범한 간식처럼 보이지만, 그 뒤에는 깊은 역사와 상징이 숨겨져 있습니다. 유럽 중세 수도원에서 시작된 이 꼬여진 빵은 수세기 동안 사랑과 신앙, 행운의 상징으로 자리 잡아 왔습니다.
1. 프레첼의 탄생 기도하는 어린아이를 위한 보상
프레첼의 기원은 7세기경 이탈리아의 한 수도사에게서 시작되었다고 전해집니다. 당시 수도사는 아이들에게 기도를 잘 외우면 보상으로 주기 위해 두 팔을 가슴 위에서 교차한 모양의 빵을 구워냈습니다.
이를 pretiola (작은 보상)이라 불렀고, 이 형태는 독일어 bretzel로 변형되어 지금의 ‘프레첼’이라는 이름으로 이어졌습니다. 특히 이 세 갈래의 구멍이 성부, 성자, 성령을 상징하여 프레첼은 기독교에서 성스러운 상징이 되었습니다.
2. 중세 유럽에서 행운과 사랑의 상징으로
프레첼은 기독교에서 사순절 기간 동안 허용된 음식 중 하나였습니다. 당시 교회에서는 사순절 동안 계란, 유제품, 육류의 섭취를 금했기 때문에, 물과 밀가루, 소금만으로 만들 수 있는 프레첼은 특히 귀한 음식이었습니다.
독일에서는 12세기경부터 프레첼이 빵집과 제빵사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으며, 점차 행운을 상징하는 음식으로 자리잡았습니다.
이후 16세기에는 프레첼이 결혼식의 상징으로 쓰이기 시작했습니다. 스위스와 독일에서는 결혼식에서 신랑과 신부가 프레첼의 양 끝을 잡고 서로 끊어내는 의식을 통해 "매듭을 묶다(tie the knot)"라는 결혼의 은유를 실천했습니다. 이는 프레첼이 사랑과 결속의 상징이 되게 만든 기원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3. 프레첼, 미국으로 건너가다
프레첼이 미국에 전해진 것은 18세기 독일 이민자들이 펜실베이니아 지역에 정착하면서입니다. 독일 출신 이민자들은 프레첼을 미국에 소개했고, 1861년 줄리어스 스터지스가 펜실베이니아 리티츠에서 첫 상업용 프레첼 제빵소를 설립하면서 본격적으로 미국 내에서의 인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이 시기 프레첼은 손으로 일일이 만들어졌으나, 1935년 자동화된 프레첼 기계가 등장하면서 생산량이 급격히 증가하게 됩니다. 현재 미국에서 소비되는 프레첼의 80%가 펜실베이니아에서 생산될 만큼 이 지역은 여전히 프레첼의 중심지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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